Stay hungry

영어 단어 게임

Favorite2010. 10. 26. 18:10

http://www.sporcle.com/games/common_english_words.php

영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 100개를 12분안에 적는 게임이다.

하다 보면 왜 이렇게 생각이 안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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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us.hsmglobal.com/notas/57783-fail-often-fail-fast-fail-cheap

 

Fail Often
• Success is often just a numbers game. The more you try, the more likely you are to find a winner. Innovation is like sales - you never know which idea will be the winner until you try things. A big obstacle for anyone reluctant to try something new is being afraid to fail. Thomas Edison for example had to make thousands of attempts at the electric light bulb before getting it right. Don"t give up after your first challenge. Our most successful leaders and entrepreneurs have often had to make at least a few attempts before they began to thrive.

Fail Fast
• One challenge many companies are faced with is being slow. Using the Fail Fast approach the motto is "Just Try It - Now". Many companies suffer from analysis paralysis where often the best choice is to just try it. It is often better to make an imperfect decision quickly than to not make a decision while trying to be perfect. More companies (and people) lose from perfection than lose from speed. Being able to fail fast can often mean getting a head start over the competition. In many cases you can work on the actual implementation later on and make changes as needed.

Fail Cheap
• Of course failures need to be affordable. This means thinking downside and risk. Risk what you can afford. Companies that thrive take "manageable risks". Be creative with ways of keeping risk low, perhaps you can test a product with a focus group instead of over-producing. Try to negotiate a deal first before accepting all the terms and conditions. Leverage the power of information and talent. Failing cheaply means you can get back on your feet more easily than someone who overextended themselves.

Having failures does not make you a failure. Not trying makes you a failure.

So Fail Often, Fail Fast, Fail Cheap. Use failure to innovate.

 

성공이라는 것이 확률 게임( numbers game) 이라면 더 많은 시도를 하면 성공 확률도 높아 지는 것이다.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한다. 자기의 자존심 혹은 자리가 불안해 질거라는 두려움도 있고 또한 인간 본성으로 변화를 두려워 하는 것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투자자에게 인기가 좋은 사업가는 실패를 경험해본 사람이라고 한다. 한번 실패를 했기 때문에 더 잘하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잊고 있는 자원중에 하나가 시간이다. 실패를 하던 성공을 하던 빨리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 저것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험과 시간이라는 건 무엇보다 중요한것이다.

 

대기업의 경우 자기가 잘하는 사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는 것을 쉽게 하지 못한다. 이유는 잘 나가는 사업부는 정해져 있꼬 새로운 사업이라는건 당장 실적이 나오는것도 아니고 매년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악순환을 끊을수 있는것이 오너가 관심을 가지고 지지를 하면된다. 하지만 그 조차도 쉽지 않다.

 

실제로 국내 DMB 시장에서 1000억정도 된다고 생각하면 벤처회사들이 다 장악하고 있는데 대기업에서는 이시장이 작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분기에 메모리가 많이는 3~4조를 벌기 때문이다.

 

벤처라는 것은 이러한 시장을 먹어야 되는것이다.

 

마지막으로 실패가 두려운 이유는 댓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벤처는 너무나 큰 리스크가 따르기때문에 쉽게 많은 사람들이 시작을 하지 못한다. 미국의 경우 투자자들이 이러한 리스크를 자기들도 큰 보상을 원하고(스탁옵션) 미래에 투자를 하지만 우리 나라의 투자자들은 이러한 기술 평가와 미래 예측 리스크 관리를 하지 않고 이를 벤처 사업가에게 다 부담을 지운다. 즉 담보를 요구한다든지 얼마이상 투자를 하게 만든는 것이다. 벤처라는 것이 잘되면 상관없지만, 안되면 완전히 자기 인생이 망해야 된다고 하면 누가 할 수 있을것인가?

 

미국처럼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설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할것이다. 우리 나라에선 또 이를 악용해서 이상한 벤처들이 주식 장난을 하던지 하는 일이 있는데 이러한건 정말 철저히 그 책임을 물어야 할것이다.

 

실패를 장려하는 사회가 성숙된 사회일 것이다. 아이가 실수를 해도 다음엔 더 잘하리라 믿는 부모와 같이. 우리는 누구나 다 실수에서 배우지 않았는가?

 

 

 

Author Bio:
Jim Estill is a partner on Canrock Ventures. Prior to that, he started a compute distribution company from the trunk of his car, and grew that company to over 350 Million in sales. He sold this company to Synnex Canada, which he ran from 800 million to 2 billion. Mr. Estill is a published author and speaker on topics like time management, leadership, and social media. Mr. Estill has been actively involved in investing and mentoring many early stage tech businesses. 

Start with Why

Favorite2010. 5. 16. 06:25
StartWithWhy(Hardcover)HowGreatLeadersInspireEveryonetoTakeActi 상세보기




With an undergraduate degree in anthropology, most of Simon Sinek’s career has been spent in advertising. Although he began law school in London, he shortly left the program, moving to New York where he joined Euro RSCG, with a stint at Ogilvy & Mather, working on accounts for Oppenheimer Funds, MCI, NASDAQ and DISH Network.  In 2002, he started his own company, Sinek Partners. His book, Start With Why, outlines the basis of his current work in leadership consulting.  

Sinek also contributes to several efforts in the non-profit sphere: He works with Count Me In, an organization created to help one million women-run businesses reach a million dollars in revenue by 2012, and serves on the Board of Directors for Danspace Project, which advances art and dance.  He writes and comments regularly for several major publications and teaches a graduate-level class in strategic communications at Columbia University.


 
"As an ethnographer, we are in search of why but we actually ask what."
Simon Sinek

트윗에서 알게된 TED 강의인데 정말 멋지다. 아마  iPAD에서 첫번째로 이책을 사게 될것 같다. "Start with Why"

저번에 말한 Story 가 spec을 이긴다라는 책과 비슷한 내용을 말하고 있는데 훨씬 더 논리적이다.

아마 anthropology를 전공해서 그런것 같다.

보통 회사들은 WHAT-HOW-WHY 의 순으로 설명을 한다. 하지만 WHY-HOW-WHAT 의 방식이 더 감각적이고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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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줄수 있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여기 우리의 철학이 담긴 제품이 있습니다. 최선의 기술 우리의 디자인 마인드 . iPhone

왜(Why)해야 하는 지를 생각하고 일을 하고, 왜 살아야 하는 지를 생각하고, 오르고자 하는 산을 결정하는것 등등..

자기가 왜 해야 하는지 처절하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수 있고,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고,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그러하였다.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정하고, 그것을 이루어 가는 것

그냥 열심히 살고 공부 잘하고 대학가고 좋은 직장 가고, 보다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자기의 에너지를 집중하는것, 그런것이

좀더 인생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이다.

소비자의 가슴에 감정에 호소하는 이성이 중요한 시대이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2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어럼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

 


어둠의 벼랑 앞에서

내 당신을 부르면

기척도 없이 다가서시며

"네가 거기 있었느냐"

"네가 그동안 거기 있었느냐"고

물으시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

왜 그렇게도 야위셨습니까

못자국의 아픔이 아직도 남으셨나이까.

도마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

그상처를 조금 만져볼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혹시 내 눈물방울이 그 위에 떨어질지라도

용서하소서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 있느냐고

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

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

 


“어쩌다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까?”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국민일보 2010.03.09 19:57 미션라이프 이태형 선임기자 hlee@kmib.co.kr]

 

[미션라이프] 이어령(76) 전 문화부장관은 2007년 7월 일본 도쿄에서 세례를 받았다. 당시 이 전 장관의 세례 소식은 기독교계를 뛰어넘어 큰 화제가 됐다. 각 언론은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이 영성의 세계로 넘어갔다며 소식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본보 2007년 7월25일자). 


이미 알려진대로 이 전 장관은 딸 이민아 변호사(미국 거주)를 통해서 영성의 세계를 노크하게 됐다. 이 변호사의 암과 실명직전의 시력장애 등이 믿음으로 치유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전 장관은 하나님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딸 문병을 갔던 하와이의 작은 교회에서 ‘하나님, 사랑하는 딸에게서 빛을 거두지 않으신다면 남은 삶을 주님의 자녀로 살겠나이다’라던 그의 기도는 세례로, 믿음 생활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전 장관은 치유의 기적 때문에 견고한 지성의 갑옷을 벗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가슴 깊숙한 곳에는 본래적으로 영성의 수맥이 흐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절대자를 원했다. 그 분은 끊임없이 이 전 장관을 쫓고 계신 분이셨다. 사랑하는 딸의 경험을 통해서 절대자 하나님을 만났다. 그분을 만나면서 하나님이야말로 본래부터 원했던 절대자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 전 장관이 하나님을 찾고, 만났을 때에 하나님은 이 전 장관을 얻었다. 인간 ‘이어령’이 하나님을 얻는 순간,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 이어령’을 얻었다. 그것이 구원이었다.

기적 때문에 믿음을 가졌다면 기적 같은 일 때문에 배교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도쿄에서 세례 받은 지 정확히 3주 후에 이 변호사의 장남이 25살을 일기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명문 버클리대학을 졸업한 수재의 돌연한 죽음 앞에서 아버지와 딸은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렵게 얻은 신앙을 흔들리게 하지 않았다. 딸은 이사야서 55장8절 말씀을 묵상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너는 그래도 나를 믿겠느냐” 딸은 말씀 그대로 믿었다. 그러면서 손자를 잃은 슬픔에 아버지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때 이 전 장관은 시 한편을 보내줬다. ‘얼마나 큰 슬픔이었기에/너 지금 저 많은 빗방울이 되어 저리도 구슬피 내리는가... 너 지금 그 많은 비가 되어/오늘 내 문지방을 적시는구나.’

깊은 슬픔 속에서도 이 전 장관은 믿음을 지켰다. 영성의 세계로 들어오면서 그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그 자체였던 것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세례 받을 당시 그는 “절망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영성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영성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자기 파괴’라는 극적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 말대로 이 전 장관은 세례 이후에도 여전히 절망과 자기 파괴의 경험을 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의 이같은 믿음의 여정이 ‘지성에서 영성으로’(열림원)라는 한권의 책으로 나왔다. 세례 받은 이후 그는 수 없이 질문 받았다. “어쩌다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책을 받자마자 그야말로 단숨에 읽었다. 흡인력 강한 책이었다. 한 지성인이 영성의 세계로 건너가기까지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품격 있게, 감동적으로 펼쳐졌다. 처음으로 공개되는 돌연사한 손주와 관련한 이야기는 애잔하면서도 진한 울림을 준다. 육신의 아버지와 ‘하늘 아버지’의 만남을 그렇게도 소원했던 딸 이민아 변호사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지독한 사랑’(Tough Love)을 느끼게 된다.

이 책에는 저자가 밝힌 대로 ‘원고료로 환산할 수 없는 글’이 담겨있다. 책에서 저자는 죽는 날 까지 글을 쓸 것이라고, 열정과 사랑, 증오가 식어 버리기 전에 추운 겨울에도 피는 수선화처럼 고개들고 일어서는 언어들을 찾아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전 장관이 영성의 언어로 표현한 이 책을 통해 수많은 무신론자들이 ‘하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면 ‘이어령’을 이 땅에 보내고, 길이 참고, 결국 만나주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이리라.


이어령 前 문화부 장관 “세례 받을 때 눈물 났다”

세례 받은 후 가장 변화된 점은 인간의 오만 버리게 된 것 [2007-10-25 13:34]

 

▲이어령 前 문화부 장관

“그동안 누군가에게 몸을 맡겨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외로운 삶인가. 혼자 바들바들하면서 여기까지 온 내가 너무 불쌍했다. 가장 사랑하는 내 딸도 얼마나 쓸쓸했을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이어령 前 문화부 장관이 CBS TV <영화감독 이장호, 누군가를 만나다>에 출연해 최근 기독교 세례를 받은 때의 심정을 고백하고 삶과 신앙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이어령 前 장관은 22세 때 문단에 데뷔한 이후 새로운 비평문화를 개척하며 50년 이상 장구한 문학예술 활동을 해왔다. 크리스천이 된 후의 삶의 변화에 대한 질문에 이 前장관은 “과거 오류로만 보였던 성경이 지금은 구슬을 꿰듯 새롭게 읽힌다”며 “세례 받는 순간에 혼자 바들바들하면서 여기까지 온 내가 너무 불쌍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며 세례 받을 때의 심정을 고백했다.

방송에서 이장호 감독이 이 前 장관에게 지식인이자 복음의 사도 ‘바울’을 떠올리게 된다고 하자 이 前 장관은 “나는 바울이 아닌 도마이다.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지식인이다. 그러나 ‘도마’도 물에 빠지면 허우적거리고, 철저한 절망의 궁극에 이르면 ‘욥’처럼 영성의 소리를 듣게 된다”며 절망을 겪으며 지성인에서 기독교인으로 귀의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신앙인으로서의 시련과 박해를 각오하면서 ”지금까지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영성과 천국이 있는 문지방에서 지금까지 전력투구한 삶과 마지막 나를 던지는 처절한 도전 앞에 서있다”라며 신앙인으로서의 솔직한 심정을 고백했다.

세례를 받은 후 가장 변화된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 前장관은 ‘토끼와 거북이’ 우화를 예로 들면서 “세례 받기 전까지 나는 토끼 인생이었다. 나는 잘났고,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그게 아니다. 나는 거북이다. 그동안 얼마나 잘못 살아왔고 얼마나 많은 것이 부족했었는지... 인간의 오만을 버리는 것이 크리스천으로서 가장 큰 변화다”라고 고백했다. <크리스천 투데이>  이미경 기자 mklee@chtoday.co.kr

 


< 국민일보>‘지성에서 영성으로’세례 이후 1년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2008.09.04]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76·문학평론가)이 크리스천이 되어 세례를 받은 지 1년이 조금 지났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화제어를 만들어냈던 이 전 장관은 그러나 세례 이후 신앙인으로서의 침묵기를 보내왔다. 몇 차례 강단에 서긴 했지만 한국교회에 대한 당부와 강의로 신앙고백을 대신한 정도였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꼽히는 이 전 장관이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고, 신앙을 가진 이후 어떻게 달라졌는지 들어봤다.


- 세상을 홀로 맞서는 인문학자가 크리스천이 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세례 이후의 날들을 소개해 달라.

"지난 1년간 광야의 시간을 보냈다. 신앙의 벌판에 서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어떤 매체와도 신앙에 대한 얘기는 피해왔다. 1년이 지나면 자신감이 생기려니 했는데 아직도 똑같은 상태다. 여전히 광야에 있고, 여전히 어려움 속에 있다."


- 광야란 무엇인가.

"여섯 살 적에 보리밭 길에서 굴렁쇠를 굴리며 혼자서 서럽게 울었던 적이 있다. 햇볕, 침묵, 절대적인 고독과 외로움, 죽음 앞에서의 어린 생명, 그런 것들이 이유였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최초의 종교체험이었던 것 같다. 죽음이 있다는 것, 영원하지가 않다는 것, 종교에 대한 관심은 그때 시작됐지만 멈춰서서 관찰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로부터 70년 동안 정신없이 뛰다가 딸의 투병이 계기가 돼 기독교와 관계를 맺게 됐다. 그러나 회심하고 세례를 받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지점을 신앙의 광야라로 말하고 싶다."


- 그 어려움은 내면적인 것인가, 아니면 외부적인 것인가.

"두 개 모두이다. 외부적인 어려움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설명이 잘 안된다. 그동안 욥기와 예레미야애가를 무수히 읽으며 그 통절함에 전율했고,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총을 찬미하고 당신을 부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성경의 깊이에 흠뻑 빠져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 확실한 크리스천이라고 자신할 수 없는 것은 심한 영혼의 갈증 속에서도 내 행동이 전적으로 변하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마치 번지점프를 한다고 해야 할까. 끈을 매지 않고 뛰어내릴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너무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의 은총 속으로 곧바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지금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과거에는 세속적 삶의 가치에 대해 고민했다면 지금은 영적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고민의 차원이 달라진 것이다. 은총 속으로 곧바로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지금의 고통이 아주 값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조금 달라진 것은 있다. 과거 내 책상의 사전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성서가 놓여 있다. 얼마 전 출간한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문학세계사)에는 과거 무신론자 때 쓴 시 외에 10편 가량의 신앙시가 수록돼 있는데 그 시편들은 내 절실한 기도와 처절한 심정에서 나온 것들이다. 기독교로의 회심 이후 내가 뭔가 주님의 사역을 한 게 있다면 그 시편들이 바로 그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 이쪽과 저쪽을 다 경험해 본 사람의 입장에서 세속의 문화는 결별하기에 너무 재미있지 않나.

"나는 과거에도 세상의 문화에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권력과 돈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 데에 재미를 들이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어떤 성직자 못지 않게 금욕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세속적 쾌락이나 물질적 재미를 모르고 살면서도 종교적 생활로 가지 못했던 것은 문학이 주는 신성한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크리스천이 된 지금도 세상의 문화와 쉽게 결별하지 못하는 것은 재미 때문이 아니라 인간적인 관계의 얽혀있음, 그 인간적인 틀을 넘어서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 신앙을 갖게 된 이후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글쓰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시집 서문에도 썼지만 나는 시의 언어를 반물질이라고 파악한다. 태초의 공간에 물질과 반물질이 있었는데 그 중 시의 언어는 반물질이라고 본다. 그 반물질은 빛을 만나며 대폭발한다. 빅뱅을 하는 나의 상상력은 갇혀있는 것이 아니다. 내게는 교리 해석도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 성경의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는 말씀을 '버리는' 것으로 해석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의미를 설명해 달라.

"세속적 갈구는 노동으로 얻어지지만 영적 갈구는 그런 것으로 얻어질 수 없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라는 말은 가진 것을 버릴 때 영적 목마름이 해결된다는 의미라고 본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영생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생이 아니라 물질적 빵을 구하고 있다. 당연히 줄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늘도 물질의 빵을 구하기 위해 새카맣게 몰려들고 있다. 예수님이 오늘에 오셔도 참으로 외로울 것이다. 세속의 빵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구하는 것은 세속의 것을 버리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많은 글을 쓴 작가가 서양 종교로 회심했다고 욕을 먹은 적은 없는가.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나는 배용준과 같은 스타였던 적이 있었다. 내 글을 읽었던 그 팬들이 나를 배신자라고 욕을 하고 인터넷에 여러 글을 올린 것을 보았다. 그러나 반대로 나에게 달려와 인사하고 악수를 청하며 뱃 속에 잉태한 아이에게 축복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다. 세상의 셈법은 항시 그렇다. 이쪽이 있으면 저쪽이 있다."


- 지성과 감성과 영성은 어떤 지점에서 구분이 된다고 보나.

"예수님은 육체로 오셨다. 그것이 바로 감성과 지성의 단계이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의 세계를 연 것이 바로 영적 세계이다. 예수께서는 감성 지성의 세계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을 돌파해서 영성의 세계로 들어가셨다. 영성의 세계로 들어갈 때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진다. 지성과 감성은 영성의 바탕이다. 지성과 감성의 단계를 넘어서면 영성의 새로운 몸을 얻게 된다고 본다."

 

-기독교의 온순한 사랑의 언어가 세속의 폭력적 언어 앞에서 무기력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예수를 부정하는 많은 언어들이 힘을 얻고 있지 않은가.

"사랑의 언어는 결국은 이기기 마련이다. 증오의 언어를 가진 야곱이 처음에는 이기는 듯했지만 결국은 살려 달라고 천사에게 매달리지 않았는가. 사랑의 언어가 증오의 언어와 싸우면 처음에는 사랑의 언어가 무기력해 보이지만 결국은 이긴다. 파워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랑의 언어에는 거듭나게 하는 힘이 있다. 불효자는 늙은 아비를 팰 수 있지만 효자는 아비를 패지 못한다. 아버지의 높은 권위와 사랑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사람은 얼마든지 하나님을 능멸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을 믿는 사람은 꼼짝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만 사랑과 은총이 주어지는 것이다."


- 현실적으로 많은 것을 얻었고 또한 극복했기 때문에 영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아닌가. 시장통의 상처받고 힘 없는 낮은 사람들에게 영성이 그토록 필요한 것인가.

"영성은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하다. 그들이 영성을 갈구한다면 가난한 자의 순수성 때문에 높은 영성을 얻을 수 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은 물질적 결핍 때문에 영성을 추구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물질적 결핍이 영적 갈구로 이어져야 한다. 빈자의 제단이 빛나는 까닭은 영혼이 맑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 중에서 많은 성자들이 나왔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물질적 절박함 때문에 영생의 빵에는 관심을 갖지 못하고 물질적 타락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물질적 결핍을 해결하기 위한 혁명은 역사적으로 성공한 예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혁명은 물질적 증오만을 낳을 뿐이다. 영혼의 구제 없이 물질적 구제는 불가능하다."  * 임순만 기자 soon@kmib.co

 


이어령 전 장관, 나의 간절한 고백 [조인스]

 

지성에서 영성으로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이어령 (열림원, 2010년)
상세보기

왜 나입니까? 그러나 거기에 답은 없었다.
여전히 나약한 인간은 흔들리며 영성의 문지방을 오르내린다.

젊은 시절의 철저한 실존주의 행각, 냉철한 분석과 영역을 구분하지 않던 날 선 비판, 살아 있는 백과사전…. 시대의 지성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역시 한 명의 나약한 인간이었다.

2004년 교토 연구원 시절, 홀로 지내던 골방은 점차 쓰레기 더미로 넘쳐났고, 그 빈 방에서 절대 고독과 마주했다. 감기에 걸린 어느 날엔 고열에 신음하며 환몽을 꿨다. 풍랑이 거센 바다를 아슬아슬 걷는 위태로운 사내가 자신이었다. 그 사이사이 영성은 지성을 톡톡 노크하고 있었다.

미국 변호사였던 큰딸의 갑상선 암 투병과 뜻밖의 실명 위기…. 딸이 치료차 들른 하와이의 작은 교회에서 아버지는 무릎을 꿇었다. “나의 첫 생명으로 태어나 아버지를 쳐다봤던 그 눈을 지켜주신다면 당신을 따라 사역하겠습니다.” 2007년 봄, 딸의 눈은 회복이 됐고, 그해에 아버지는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됐다.

정확히 3주 후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하버드대 법대 진학을 준비하던 스물다섯의 첫째 외손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딸의 치유를 통해 영성의 알을 깼다면, 외손자의 죽음은 시험이었다. 그 양극에 무슨 원칙이 있다는 말인가. 예단할 수 없는 시나리오 속에서 여전히 나약한 인간은 흔들거리며 영성의 문지방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한때 오만하기까지 했다던 냉철한 지성은 이제 겸손의 자리로 내려왔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최근 이어령 교수가 펴낸 책의 제목과 같다. 아버지는 영성의 알을 깨고 나오게 만든 큰딸 민아를 책의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 3월 15일 이어령(77) 교수를 서울 중구 태평로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서 만났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영성으로 가려면 일상성을 깨는 드라마가 있어야 계기가 될 겁니다. 큰 사건만이 아니고, 내면에서 두드리는 작은 사건들이 방아쇠 역할을 하고, 서서히 내 몸을 해체시켜 갑니다.
2004년 교토 연구원 시절, 홀로 지내면서 감기에 걸려 밤새도록 열에 시달렸어요. 그럴 때마다 환몽이 괴롭혀요. 좌우로 파도가 치는 험한 바다를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나갑니다. 의지할 난간조차 없고, 뚝길의 끝은 보이지 않아요. 인간은 나약해요. 병은 인간을 신앙에 가깝게 만듭니다.

딸의 기적을 통해 영성을 접했다는 말에는 잘못된 부분이 있어요. 딸의 사건이 있기 전에 영성은 내적으로 나를 툭툭 두드린 겁니다. 딸의 기적은 이를테면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온 순간이 되었던 겁니다.

인간이 절실할 때 신은 어떤 말을 들려줬나…

하와이에서 난 하나님을 필요로 한 게 아니라 딸의 눈이 회복되기만을 기도했어요. 한편으로 딸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했던 겁니다. 그 자체가 죄였지만, 급하니까 매달린 거예요. ‘두드려라, 그러면 구할 것이다’는 말을 믿고 두드린 겁니다.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계약을 한 거죠.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큰 교회였다면 그것도 못했을 거예요. 난 식당에 가면 구석에서 혼자 밥을 먹는 지극히 내성적인 인간입니다. 아주 작은 교회였어요. 목사님이 외국 분인데,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교회에 나오라고 했어요. 무턱대고 무릎을 꿇었어요. 딸의 눈을 낫게만 해주면 당신의 부름으로 사역을 하겠다고 간절하게 말이죠. 내가 아내를 사랑해서 얻은 첫 생명인데, 아버지라는 사람을 보고 방긋 웃던 눈이잖아요. 그런데 시력을 잃는다니, 말이 되는 일입니까.

딸의 손을 잡고 한국에 돌아오니 병원에서 망막 박리가 아니고 일시적인 문제가 생긴 거래요. 그 순간 희열을 느끼면서도 하나님과의 ‘계약’이 생각나서 가슴이 덜컥했어요. 나라는 사람은 세속적인 의미에서 자유로워야 할 인간인데, 무릎 꿇어야 할 인간이 된 거니까요. 그때까지도 지성은 인간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누군가는 의학과 영성의 혼돈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난 의사, 목사를 통해 또 다른 세계를 두드리고 있었던 겁니다.

세례 결심…

당시 온누리교회의 하용조 목사(큰딸은 투병 당시 LA의 한 교회에 들른 하 목사의 설교를 듣고 긍정과 희망을 읽었다)가 “이제는 믿으시죠?”라고 물었어요. 그때도 난 그랬죠. 모든 앞 못 보는 이들에게 기적이 일어나야지, 내 딸이 그랬다고 믿는다면 그건 거래일 뿐이라고요. 그때 하 목사가 낙담을 했어요.

그 다음 날, 딸이 새벽 기도를 간다고 문밖을 나서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무척 행복해 보였어요.

큰딸이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새로 산 가방을 메고 ‘아빠!’하며 손을 흔드는 그 순수한 환희와 같은 겁니다. 마흔 넘은 나이의 딸이 그 모습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때 덜컥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하신 행복이구나! 그래서 딸의 등에 대고 이렇게 외쳤어요.

“딸아, 아빠가 세례를 받아야겠다!”

*2007년 초여름, 그는 도쿄에서 열린 온누리교회 선교대회 행사에 참석해 세례를 받고 정식 크리스천이 됐다. 당시 그의 나이 일흔셋이었다.

나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그런 게 있어요.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면 축복과 시련을 알 수 없거든요. 그래도 난 나약한 인간이라 호된 시련은 견딜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기도를 드릴 때 “제발 나는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라는 걸 빠트리지 않았어요.

이게 웬일입니까. 세례 받고 3주 후 첫째 외손자가 갑자기 고열이 나더니 의식을 잃고 세상을 떠난 겁니다. 버클리대학을 나와 하버드 법대를 준비 중이었던 아이예요.

더구나 내가 키우다시피 한 아이였어요. 딸이 공부를 많이 했으니까, 무슨 시험 준비를 할 때면 손자만 한국에 와서 나와 함께 있었죠. 생각이 깊은 아이였지. 어린 나이라 엄마가 보고 싶을 텐데 한숨만 쉬고 그런 속내는 안 드러냈어요. 내가 출근하면 넥타이를 붙들고 출근하지 말라고 하고. 그 정이 얼마나 애틋합니까.

생물학자인 다윈은 신앙이 깊었는데, 딸이 열 살에 요절한 뒤 인간의 생사 결정은 신앙과 관계가 없구나, 무슨 원칙이 있다는 말인가라며 신앙을 버렸어요. 얼마나 절실하게 기도를 했겠어요? 왜 신앙심이 흔들리지 않겠어요? 그러나 난 그때 눈물과 원망을 머금고 더 철저하게 나를 던지고 해체한 겁니다.

딸의 기적에 기대어 영성을 접한 게 아니라면, 손자의 죽음은 비워야 했던 겁니다. 그러면서 더 간절하게 깨달은 겁니다. 나와 가족, 내게 소중한 울타리와 상관없이 이 세상은 더 큰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요.

예수가 박해를 받을 때, 군중 속에서 그의 어머니를 보잖아요. 그때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여인이여! 죽는다고 슬퍼하지 마라’라고 외치잖아요. 또 제자들을 가리키며 ‘저기 당신의 아들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나의 가족, 나의 혈연이 아니라 더 넓은 우주적인 개념이 있다는 것을 되새기며, 나는 아픔을 위로한 겁니다.

더 솔직한, 인간적인 얘기를 할까요. 손자를 떠나보내면서 난 홀로 기도를 하며 절대자의 무원칙하고 부조리한 시나리오를 탓했습니다. 왜 나입니까? 그러나 거기에 답은 없었어요. 그러면서 원망하는 나를 꾸짖고 흔들리는 신앙심을 탓하고, 여전히 비틀비틀 걷는 겁니다. 아직도 한 인간은 흔들리고, 영성의 문지방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겁니다.

나의 기도…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다이내믹한 말 그림이 있어요. 화백이 귀가 먹먹하고 말이 끊기는 터라, 마음속에서 외치는 말을 그린 거예요. 그게 얼마나 간절하고 절박한 일입니까.
인간은 나약하고 결핍이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나약하고 결핍이 있는 존재입니다. 글 쓰는 이는 결핍이 많고, 그걸 현실에서 분석적으로 못 풀어내니 글을 쓰는 겁니다. 영성을 접하면서 냉철한 분석과 비판이 녹아 기도서나 시를 써보게 됩니다. 글쓰기는 영성의 세계로 얘기하면 고백과 기도가 될 것입니다.
한때 나의 글쓰기는 ‘나는 이만큼 안다. 너희들을 계몽하겠다’ 하며 그렇게 땅을 향했어요. 그러나 위를 향해 고백을 하면서 한없이 작아지는 거죠.

그렇다고 기도를 잘 드리느냐 하면, 바빠서 식사 기도도 빠트린단 말이에요. 집사람이 눈치를 주면 머리는 변명거리를 찾고 있어요. 식사 기도는 밥을 맛있고 배부르게 먹고 나서 올려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죠. 이게 위선이고 지적인 조작인 거죠.

선악과를 먹은 아담도 그랬잖아요. ‘저 여인(이브)이 사과를 먹어도 좋다고 했다’말이죠. 인간의 독자적인 운명은 그렇게 죄악과 불안전, 위선과 고독이 있는 겁니다. 그러다 인간은 어느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뭔가에 휩싸이곤 하잖아요. 위에서 오든, 밖에서 밀려오든, 지성과 분석을 넘는 영적인 갈구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바라보면서 나를 해체하는 과정을 거쳐왔고, 그런 과정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단 겁니다.

지성과 영성의 균형…

편한 예를 들까요. 지적으로 똘똘 뭉친 부부가 어떻게 살까요? 서로 분석하고 논리 싸움만 하면 계속 그럴 거 아녜요? 그러면 못 살겠죠. 그런데 어느 순간 송두리째 끌어안는 무엇, 안아주는 것, 이런 것들이 분석보다 인생을 더 넉넉히 만들어주지 않습니까. 포옹을 통해 지성 너머를 얻는 것. 그 느낌을 곱하고 또 곱하면 다다르는 게 영성의 세계와 가깝지 않겠어요?

포옹(허그)은 인간이 갖는 결핍감이 절박하기 때문에 효력을 발휘하는 겁니다. 기독교는 사막의 종교잖아요. 암사슴이 샘물을 갈구하는 것처럼 그 바탕에는 갈구가 있어요. 지성의 삶은 영성을 끝없이 방해하지만 그래서 갈구하는 마음이 커지는 겁니다.

어쩌면 내가 영성을 접하는 게 늦어진 건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기 때문일 수 있어요. 사랑을 충분히 못 받은 사람은 사랑을 늦게 깨닫잖아요. 내가 아는 사랑은 절대자가 아닌 어머니에게 향해 있었던 겁니다. 내 영역에 왜 침입하느냐며 섬처럼 살았고, 결핍이 있는 인간은 냉철한 글쓰기에 집착했던 거예요. 그러다 빛과 어둠을 동시에 거치면서 한 인간은, 나누고 넓어지고 사랑하는 다른 세계를 뒤늦게 발견해 가는 겁니다. 어느 시간, 공간에서 여전히 나약하고 결핍한 인간은 간절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2010.04.24 13:15 입력 / 2010.04.24 14:51 수정
취재_강승민 기자 사진_김연지(studio lamp)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카테고리 자기계발
지은이 김정태 (갤리온,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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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항상 스펙을 중요시 여기면서 살았다. 뭔가 더 나은것 더 잘할려고 하고, 근데 한계가 있다.
인생이라는 것은 스펙이 아닌것 같다.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는 스토리가 중요하지!

나의 인생의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되겠다.

삼성과 Apple을 비교할때도 삼성은 항상 최고의 스펙을 제공한다. 하지만 Apple은 스토리를 제공한다.

스토리 = 감동 = Good to Great

스펙은 변하고 무너지기 싶지만, 스토리는 Unique하고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인생이라는 것이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는데서 불행이 시작된다.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자!

"지선씨, 한10km만 걷고 지하철 타고 와요" 2009년 11월 1일, 뉴욕시민마라톤 참가를 위해 버스에서 내릴 때 푸르메재단 백 경학 이사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여덟 시간이라도 걸어서 완주를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나였지만, 그 전날, 마라톤의 고수들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뛰게 될 마라톤코스를 차로 돌아보면서 그 결연했던 의지가 점점 염려로 바뀌어가면서 '그래, 정 힘들면 지하철타야지.' 하면서 주머니에 카드를 넣었다.

마라톤 당일 새벽부터 모여든 세계 각국의 마라톤 매니아들이 4만명이 운집하여 출발 전에 그 시간을 축제처럼 즐기는 모습은 그간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게는 별천지와 같은 아주 새로운 세상이었다. 스타트 시간이 다가오고 한그룹씩 스타트를 알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고,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괜히 운동화 끈을 자꾸 고쳐 매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뉴욕시에 속한 5개의 버로우(brough: 우리나라의 아주 광범위한 '구'에 해당함)를 모두 지나는 뉴욕시민 마라톤은 스태튼아일랜드의 끝자락에서 시작해 베라자노 내로우스라는 브루클린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이번에 나와 같은 이유로 푸르매재단의 재활병원 설립기금을 위해 뛰는 실력 있는 장애인 마라토너 네분과 도우미 두분과 함께 그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에 반도 못미쳐 나는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다들 각자 자기 페이스대로 가기로 하고 먼저 그분들을 보내는데, 그 중 하나인 전기감전 사고로 양팔을 잃은 김황태 씨(나와 같은 시기에 사고를 당해 2개월동안 같은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분)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를 생각해봐. 그때보다 힘들겠어? 끝까지 파이팅!'을 외치며 가셨다.
 걷고 뛰기를 반복하면서 그 말을 계속 되뇌었다. 그리고 나의 한계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는 말자고, 한발자국 움직일 힘도 없을 때까지는 걷겠다고 다짐하면서!

다리를 건너 브루클린으로 들어서니 양 길가에는 온통 응원하는 시민들과 밴드의 연주로 그야말로 뉴욕은 축제였다. 흑인동네에서는 열정적인 응원을 받고, 멕시칸 계통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에서는 특유의 흥이 있는 응원을 받고, 아미쉬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는 아주 정적인 응원을 받으면서, 뉴욕이라는 곳이 정말 다양한 인종이 사는 곳임을 다시한번 느낄수 있었다.

초반에는 세블럭 걷고, 세블럭은 가볍게 뛰기를 하면서 15km를 왔다. 그러고나니 왠지 하프 마라톤정도는 할수 있을 것 같았다. 21km하프지점을 통과하고 나니, 이제 곧 퀸즈보로 브릿지를 넘으면 맨하탄인데, 맨하탄은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맨하탄의 응원도 보고싶었다.
 
 발목에서 시작된 통증이 무릎으로 또 고관절로 계속 올라오면서 이제는 걷는 것도 너무 힘들어 오히려 가볍게 뛰는 게 나을 만큼 아파왔지만,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다. 맨하탄에 들어오니 우리 교회가 있는 91가 까지는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절뚝거리기 시작했고, 너무 힘이 들어 눈물이 왈칵 나오는 때도 있었다. 마라톤을 시작한지 다섯 시간이 지날 때였다. 속도는 현저하게 떨어졌고, 내 뒤에 오던 마라토너 들은 점점 나를 앞질러 가고 추위가 느껴졌다. 이제는 정말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다.
  이 무모한 도전을 끝낼 시점이 가까워 왔다고 느꼈다. 그런데 잠깐씩 주저앉은 나에게 응원하는 사람들은 'Go Korea!'(한국 파이팅!)을 외쳐주었고, 지나가던 마라토너들은 정말 괜찮냐고 묻기도 하고, 지친 나에게 바나나를 반 나누어 주기도 했는데, 신기하게 그게 너무 힘이 되어 다시 몸을 일으켜 발을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1마일만 더 가보자 한 것이 이제 마지막 버로우인 브롱스를 앞두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보자라는 생각으로 계속 걸었다.

하프포인트부터 들어온 'almost there!'(거의 다 왔어요 힘내요!)라는 응원은 마치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아파하는 나에게 '이제 거의 다 끝났어~'하던 말과 같았다. 거짓말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혹시나' 하며 희망을 품으면서 그렇게 한발자국씩 옮기다 보니 어느새 센트럴 파크가 보였고 이제 7km만 더 걸으면 피니쉬 지점이었다.
  그때부터는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은 상상에, 더욱 힘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센프럴 팍 입구에서 어느 한국인이 '이지선 파이팅! 푸르메재단 파이팅!'이라고 쓴 피켓을 보게 되었다.
  한 시간 반 전에 너무 힘들게 걷는 나를 보고 나를 응원하러 센트럴 파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포기했더라면 오늘 그분은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셨을 텐데… 나를 응원해주러 길에서 서서 망부석처럼 나를 기다려준 그분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이젠 더 힘을 내어서 피니쉬 지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해는 지고 어둑어둑해졌지만 10km도 걸어본 적 없는 내게는 상상할 수 없을 만한 거리를 걸어와 이제 피니쉬 지점이 앞에 보이니 눈물이 솟구쳤다. 기다리고 계시던 백경학 이사님이 주신 태극기를 휘날리며 결승지점에 골인했다.
 
2009년 11월 1일, 7시간 22분 동안의 나 자신과의 싸움. 해냈다! 불가능 해 보였지만 할 수 있었다. 포기하고픈 순간들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으니 기적은 일/어/났/다!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는데, 42.195km라는 멀고 먼 목표가 아닌, 하프지점만, 맨하탄까지만, 30km까지만… 1마일만 더 가보자! 한 것이 끝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인생을 흔히 마라톤에 비유한다. 오늘 난생처음 마라톤을 뛰면서 나는 그 비유에 더욱 공감하게 되었다. 죽을 것 같은 고비들이 오지만, 포기하고 싶은 고비가 오지만, 실제 우리는 죽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스스로 포기하기 전까지는. 멀고 먼 목표가 아닌, 이제 손에 잡힐 것 같은 목표를 계속 앞에 세우고 가다 보니 끝은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눈물겨운 감격과 함께 '해냈다'라는 인생의 새 역사의 페이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푸르메재단이 화성시에 건립하는 민간 재활병원은 약 350억원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2000명의 후원으로 모아진 돈은 27억원. 지금 현실에 푸르메 재단이 꿈꾸는 병원은 오늘 아침의 나에게 42.195km처럼 허무맹랑한 꿈일지 모른다.
 재활병원이 이렇게 부족한 현실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픈 150개 병상의 작은 병원은 무모한 도전일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내가 그렇게 걷고 달려온 길처럼, 사람들의 응원과 사랑이 있다면 우리의 꿈은 생각하는 것처럼 불가능 해 보이지 않는다. 오늘 나의 완주가 부디 푸르메 재단의 꿈에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기를. 또 이세상에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 앞에 절대 포기하지 않는 '희망'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뉴욕에서>

분당우리교회(http://www.woorichurch.org/) 게시판에 올라온 이지선자매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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